자파리 :: 제주성지(제주성터)와 제이각 Site of Jeju fortress 한중일
반응형

제주성지 (옛 제주성터)


제주특별자치도지정 기념물 제3호(1971.8.26.지정)

제주성은 제주시내의 중심지를 빙둘러 축조되었다. 언제 처음 쌓여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411년(태종11) 정월 제주성을 정비토록 명하였다는 기록이 태종실록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제주성은 1411년 이전에는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중국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성곽의 둘레가 4,394척, 높이는 11척이라 하고 있다.

* 1척은 시대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25~30.5센티미터 정도입니다.

* 태종(조선 3대 국왕으로 세종대왕의 아버지)


이는 지금의 산지천과 병문천 사이에 축성된 규모를 말하며, 지금 성곽의 기초가 되고 있다.
1565년(명종20) 목사 곽흘이 을묘왜변의 고통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성곽의 규모를 확대하고 격대와 타첩을 갖추었다. 1599년(선조32) 목사 성윤문이 성벽의 높이를 더 높이는 등 지금 성벽의 모습을 갖추었다.

* 아래 지도에서 오현단 쪽이 제주성터가 있는 곳이며 오른쪽으로는 산지천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문천은 시외버스터미널 서쪽에 흐르는 하천을 말합니다.


이어 1780년(정조4) 목사 김영수가 산지천이 범람하여 민가에 피해가 많자 이를 대비하여 간성을 축조하는 등 지속적인 정비가 이루어졌다. 1925년부터 1928년까지 제주항을 개발하면서 성벽을 허물어 바다를 매립하는 골재로 사용하면서 제주성의 옛자취는 대부분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남아있는 성벽은 조상들의 축성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1925~1928년은 일제시대 제2기 일명 문화통치 시기로 산미증식계획이 실시되고 헌병이 보통경찰로 바뀌었으며 언론의 자유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던 시기입니다.

Jeju Fortress was built around the center of Jeju City. The year construction of the fortress is not clear. In 1411 (the 11th year of King Taejong). Jeju Fortress was maintained by the order of the government. According to records of Taejongsilnok (the annals of the King Taejong), Jeju Fortress was known to have been built before the year of 1411. As recorded in a geography book from the Joseon Dynasty ( onggukyeojiseungram), the circumference of the fortress was recorded to be 4.394 cheok (approx. 1,331m and the height was 11 cheok (approx. 3m). Jeju Fortress in this book refers to a consecration of the fortress between Saniicheon Stream and Byeongmuncheon Stream, which has been the foundation of Jeju fortress. In 1565 (the 20th year of King Myeongjong), Jeju governor Gwakheul enlarged the size of the fortress and built observatories and bastions in order not to repeat the pain of Eulmyowaebyeon. In 1599 (the 32nd year of King Seonjo). Jeju governor Seong Yunmun made the fortress walls higher and made arrangements for its preservation. In 1780 (the 4th of King Jeongjo), Jeju governor Kim Yeongsu built bulwarks to prepare for natural disasters after private houses were badly damaged by flooding Sanjicheon. Since then, there has been construction and ongoing maintenance. While Jeju port was constructed from 1925 to 1928. the walls were broken down and used as aggregate to reclaim the sea. Then, the most traces of the Jeju fortress disapp -eared. Nevertheless, the part of the walls that are left here has become a valuable materials that show the methods of the fortress construction during Joseon dynasty.

 

济州城环济州市内中心地段而建具体的初建时!期不详  <太宗实录> 中可找到1411(太宗11)正月下令 整修济州城的记录, 由此可J斤州州城龙白为建立时其期应在£1411年之之前 (<新斤曾东国国宾奥地月性宽>的记载城郭 周长为4,3994高为11这是指见山地也川#屏门川之间的#城郭规模 也是现在城享B的基础 1565(明宗 20),济州牧使郭萧乞为了使济州不再重路留2卯仪变的覆辙,扩大城郭的规模,设置了击台与垛媒,1599 (宣祖32)济州牧使成成文又加高城墙而成为了现在的济州城墙1780(正祖4年山地川河水泛滥,居居 受灾严重,牧使金永缓为抵挡洪水,建造了间城,持续维持整修,1925年到1928年开发济州码头时,城墙板 拆毁,废墟用来做填海的骨骨材 济州成白帕迹大部分被拆除 硕果果仅有而遗留留在山t的城墙就成为了可以人了翠祖 先建筑方法的珍贵材料

 

済州城 済州市内中心部むようにかれた. 最初築造年代かでないが 1411(太宗11)旧暦1済州城整備じたという記録太宗實録にあるため 1411年以前であることはかっている。 「新増東国興地勝覧 には城郭全長4394 さが11となっている これは山地川併門川られた城郭規模現在城郭基礎になっている済州牧使O1565(明宗20)倭冠による乙叩倭変(1555)しみをさないため 城郭規模拡大して(攻撃施設)O(O干状)けたその 済州牧使Oによって1599 (O32)城壁がさらに増築されて現在姿になった 済州教使金永O1780 (正祖4) 山地川のによる民家への被害えるために間城(O)くなど 持続的整備われた 1925から1928まで済州港開発する した城壁 ての材料にしたため 済州城原型ほほとんどなくなってしまった そのためこちらにってている城壁 先人築城法貴重資料になっている

 

제이각 jeigak tower 

제이각은 왜적을 제압하기 위한 누각이다. (한문으로는 오랑캐를 제압하기 위한 시설이라는 의미군요)


1599년(선조32) 제주목사 성윤문이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읍성 남문 동측 치성 위에  건립하였다. 지형적으로 매우 가파르고 험한 낭떠러지의 높은 언덕이어서 제주읍성을 내려다보면 성안은 물론 주변의 언덕과  하천 그리고 해안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가 적의 동태를 관찰하며 유사시에 왜적을 무찌르고기위한 장대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제이각을 오르기 위한 다리는 높이가 꽤 높았다


제이각은 남쪽으로철(凸)자 형을 이루고 있는데 남쪽은 적루이고 북쪽은 장대의 구조로 되어 있다.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아 이층구조로 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누대이다. 1555년(명종10) 6월 을묘왜변으로 제주읍성이 포위당하는 등 위협을 느끼자, 방어책으로 1565(명종20) 12월 제주목사 곽흘은 제주읍성의 동성을 동쪽으로 옮겨 축성하였다.

제이각의 모습


임진왜란 직후 1599년(선조32) 제주목사 성윤문은 성곽을 높이고 격대와 포루를 설치하였으며 남성의 제일 높은 곳에 제이각을 세워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제주목도성지도에는 청풍대로 기록되어 있어, 1850년 전후의 평화로운 시대에는 관리와 선비들이 경승을 감사항기 위해 즐겨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제이각 내부의 모습, 확실히 철자 모양을 하고 있다.
제이각에서 동측 산지천을 바라본 모습

제이각에 올라 성벽위에서 동측을 바라보면 산지천이 휘돌아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산지천이라고 하지만 평소에 물이 흐르는 모습은 보기 힘든 하천이다.

경사가 매우 가파라 토사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함인지 계단식으로 재해방지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근 공설 주차장

제주성지를 방문하기는 매우 편리한데 인근에 공설 주차장이 있다. 사진은 제이각에서 내려다본 주차장의 모습이다.

제이각에서 서측을 바라본 모습

제주성은 제주 돌담으로 흔히 볼 수 있는 화산석인 현무암  재질의 돌을 축성한 것이다.

현무암은 화산이 분출되어 빠르게 식으면서 가스등이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해 굳기 때문에 돌 사이사이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돌을 말한다.

그런데 밭담으로 듬성듬성 쌓는 방식과는 다르게 확실히 적을 막기 위해 공들여 쌓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축성법에 대한 연구자료도 같이 제공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것이 아쉽다.

제주 여행을 할 때 먹거리나 풍경 위주의 여행이 아닌 지식의 탐구가 목적인 여행이라면 이 곳을 들려볼만하다. 

지식의 탐구를 위한 여행인 경우 이곳과 함께 삼성혈,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을 함께 추천한다.

 

반응형
Posted by 드워프의 자파리
: